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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다. 차 안에는 당신의 가족이 타고 있다. 산길을 내려가는 도중에 당신은 모종의 이유로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차는 점점 가속한다. 시속 100킬로미터, 시속 110킬로미터, 시속 120킬로미터. 상황은 당신의 통제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 일이라는 생각에 앞에서 트럭을 몰고 가고 있는 당신의 친구 A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는 대답한다. 내가 자네 차에 브레이크를 설치해줄 수 있는데, 어떻게 할까? 당신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브레이크를 설치하려고 하자, 조수석에 앉은 당신의 가족 중 한 명인 B가 당신에게 큰소리로 따지기 시작했다. 그는 브레이크 설치를 반대했다. 아래의 대화 목록은 브레이크 설치와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정리한 것이다.
문) 인체에 유해한 전자파와 소음 등의 문제로 브레이크의 안전성이 의심된다.
답) 각종 조사 끝에 브레이크의 전자파와 소음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 이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 브레이크를 탑승객들에게 미리 알리고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절차상의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답) 브레이크 설치는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이므로 신속한 결정이 필요했다. A도 먼저 나에게 동의를 구하고 설치를 진행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요소는 없다.
문) 브레이크 설치를 백지화한 뒤 원점으로 돌아가 차 안의 모든 탑승객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답) 안전 문제를 놓고 탑승객들의 동의를 얻어야 된다는 주장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다른 어떤 차도 그러한 방식으로 운영한 적이 없다. 운전사는 차에 탄 모든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문) 브레이크는 최신 기술이기 때문에 매우 비싸다고 하는데, 그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거냐.
답) A가 전액 부담한다. 첨언하자면 브레이크는 A가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것이고 우리에게 잠시 빌려주는 거다. 즉, 비용은 이미 지불된 상태이며 우린 돈 한 푼 쓰지 않아도 된다. 공짜다.
문) A가 나중에 브레이크 비용을 요구할 수도 있지 않나.
답) 그럴 명분이 없다. 브레이크 설치는 이미 끝난 문제다. A가 다른 걸로 트집을 잡는다고 해도 그건 별개의 사안이다.
문) 아직 실전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데 브레이크의 성능이 검증 안된 것 아닌가.
답) 현재 테스트를 거듭하면서 브레이크의 성공 확률을 높이고 있으며 지속적인 개량과 연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실전을 가정한 상태에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브레이크의 성능은 신뢰할 수 있다. 추가로 말하자면, 브레이크는 현존하는 최고의 안전 장치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만약에 대안이 있다면 제시해달라. 경청하겠다.
문) 결정적인 순간에 브레이크가 작동을 안할 수도 있지 않은가.
답)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내 가족이 살아 남을 확률이 1퍼센트라도 그 쪽에 운을 걸어야하지 않느냐. 그 반대로 배팅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문) 브레이크는 A의 것이기 때문에 운전의 자율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
답) 문제가 발생할 경우 브레이크는 A와 내가 공동으로 밟는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나에게 통제권이 있다.
문) 상황이 어려워질 경우, A가 우리를 구해줄지 알기 어렵다.
답) 나와 A는 오랫동안 좋은 친구로 지내왔다. 내가 A로부터 도움을 받았듯이 나 역시 A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기 때문에 우리 둘 사이에는 매우 깊은 신뢰가 있다. 그리고 우리 차 안에는 A의 가족도 몇 명 타고 있다. 만약에 나와 A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다고 해도, 그들의 존재가 A에게 우리 차를 도와줄 동기를 제공한다. 브레이크 또한 A가 아끼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우리 차가 사고 당하는 일 만큼은 막으려고 할 것이다.
문) 브레이크를 설치하면 A와의 우정이 강해질 수 있다.
답) 뭐, 그게 문제인가?
문) 브레이크를 설치하면 옆에서 버스를 운전하는 C를 자극할 수도 있다.
답) 우리 차의 안전을 위해서 설치하는 브레이크인데, C가 왜 화를 내느냐.
문) C는 브레이크가 우리 차의 속도를 높일 수 있어서 결국 자신들에게도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답) 브레이크는 속도를 낮추는 장치다.
문) 그래도 싫다고 하면서 우리 차를 향해 경적을 마구 울리고 있다.
답) 그것은 C의 부당한 간섭이다. 우리는 단호하게 우리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 만약 C가 우리를 계속해서 괴롭힌다면 그 또한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게다가 브레이크는 A의 것이다. 브레이크 문제로 우리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것은 A에 대한 도발이다. C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곧 잠잠해질 것이다.
문) A가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브레이크는 그것을 위한 대비책 아니냐.
답) A가 정말 그럴 생각이라면, 우리는 더욱 더 신속하게 브레이크를 설치해서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문) 브레이크를 빌릴 것이 아니라 자체 개발하는 방법도 있지 않았는가.
답) 이미 우리의 독자 기술로 브레이크를 만드는 중이다. 하지만 이는 몇 년 후에나 완성되고 제대로 작동할지도 불확실하다. 지금은 A에게서 브레이크를 빌려오는 방법이 최선이다.
문) 브레이크 대신 에어백이나 안전벨트 등을 보완하는게 더 좋지 않나.
답) 그것 역시 해야 한다. 브레이크를 공짜로 설치해서 좋은 건 그런 기존의 안전 장치들을 강화시킬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점이다.
문) 사고가 나면 브레이크를 밟아도 운전석이나 조수석에 앉은 사람들은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답) 에어백과 안전벨트가 필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브레이크가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2차, 3차의 안전 장치가 있어야 한다. 안전 장치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문) 브레이크가 있든 없든 사고는 어차피 발생하는것 아니냐.
답) 아니다. 브레이크가 있어야 사고를 피할 수 있다. 그래서 설치하는 건데 무슨 소리냐.
문) 그 돈으로 맛있는 거나 사먹는게 이득 아닌가?
답) 공짜라고 이미 몇 번 말했다.
문) 혹자는 브레이크가 오히려 사고의 확률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답) 그게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문) 브레이크 설치를 중단하고 대화로 해결하자.
답) 중력과 대화가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