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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디자이너 단 로세하르데 (Daan Roosegaarde)가 개발한 도시 속 매연을 정화시켜주는  대형 공기청정기 구조물. 7미터 높이의 스모그 프리 타워는 시간당 3만 제곱미터 주변의 부유물질을 빨아들여서 2,800만 리터에 달하는 공기를 정화시킬 수 있다. 이론상으로 축구 스타디움 크기의 공간에 있는 공기 속 불순물을 하루 만에 대부분 제거할 수 있는 규모이다. 특히 스모그의 주구성원인 PM10와 PM2.5 미세먼지를 75퍼센트 이상 흡입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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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그 프리 타워의 핵심은 정전기를 발생시켜 스모그 입자를 빨아들이는 기술이다.  마치 베네시안 블라인드를 연상시키는 알루미늄 외벽 안에는 거대한 이온화 필터가 존재한다. 구조물 상층부에 위치한 통풍 시스템이 매연을 끌어들이는데, 이를 아래로 밀면서 구리 코일을 사용해 3만 볼트의 고전압으로 미세먼지에 양전하를 띠게한다. 이 때 스모그 프리 타워에 음극이 흐르게 되면 미세먼지는 흡착판에 달라붙고 깨끗한 공기는 하층부의 통풍구로 배출된다. 일반적인 이온화 필터를 사용하는 공기청정기들과는 달리 스모그 프리 타워를 통과하는 미세먼지는 음전하를 띠지 않아 오존을 생성하지 않는다. 또 전력소비량도 적은데 - 1,170 와트로 온수 보일러보다도 적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 때문에 풍력과 태양광 등의 친환경 에너지로도 충분히 사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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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중국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대기오염 적색경보가 발령된다. 대기질 지수 (AQI)가 매우 심각한 수준인 300마이크로그램을 넘었고 미세먼지 농도 역시 1,000을 넘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 (WHO)의 권고량보다 17배 더 높은 수치이다. 학교들은 문을 닫았고 도시 내 건설 작업들은 일시 중단되었다. 동시에 탄력 근무제 및 차량 요일제를 실시하였고 마스크의 판매량이 급상승했다. 중국에서의 미세먼지와 스모그 현상은 매해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해마다 160만 명의 인구가 대기오염으로 인해 사망하는데, 이는 전체 사망률의 17%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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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세하르테가 2013년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경험했던 지독한 대기오염은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반 고흐 자전거 도로워터라이트 그리고 스마트 하이웨이 등의 작품들처럼 친환경 공공 설치예술을 주로 다뤄왔던 디자이너이다. 그는 제작비 마련을 위해 킥스타터 프로젝트로 모금을 시작했다. 당초 목적은 한화 6,400만원에 해당하는 5만 유로 정도였지만, 2개월 동안 목표  모금액의 두 배가 넘는 11만 3,000유로를 모집하는데 성공했다. 로사하르테는 그 외에도 대학과 기업들로부터 후원을 받았는데, 이중에는 네델란드 델프트 공과대학의 밥 울썸 (Bob Ursem) 교수도 있었다. 그는 로사하르테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스모그 프리 타워의 이온화 필터를 개발한다. 완성된 구조물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시범 설치 기간을 가졌다. 공기를 정화하는 능력을 보는 시험에서 합격점을 받은 뒤 스모그 프리 타워는 베이징으로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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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베이징의 751 디자인 공원에 스모그 프리  타워가 들어서게 된다. 중국 탑의 건축양식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이 기이한 구조물은 천천히 금속 날개들을 위로 접고 매연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로세하르테는 중국 환경보호부의 지원으로 스모그 프리 타워를 다른 도시들에 추가적으로 설치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스모그 프리 타워가 깨끗한 공기를 향한 베이징의 꿈에 관한 것이라며, 가격을 낮추기 위해 판매가 아닌 대여를 해주는 방식을 고려해보겠다고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밝힌다. 만약 구조물의 공기 정화 능력이 검증된다면 인도의 뭄바이나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등 대기오염이 심각한 도시들에도 순차적으로 설치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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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그 프리 타워의 숨겨진 기능은 공기 중에서 수집된 미세먼지를 활용하여 보석을 만드는 것이다. 필터를 통해서 걸러진 불순물을 압축시키면 투명한 유리 같은 결정체가 생성된다. 스모그 프리 큐브라는 이 보석은 1천 제곱미터 범위의 공기를 정화시킬 때마다 하나씩 만들어진다. 42퍼센트가 이산화탄소로 이뤄진 스모그 프리 큐브는 반지나 커프스 단추 등의 장신구에 박혀서 판매되었는데, 스모그로 다이아몬드를 만든다는 이 독특한 발상은 일종의 무브먼트였다. 로세하르데는 스모그 프리 타워를 통해 사람들에게 환경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내고 싶었다고 한다. 구조물의 현실 지속성보다는 정치적 의미에 더 큰 방점을 찍는 발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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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환경 언론인 포럼 (CFEJ)는 설치가 끝난 뒤 50일  후,  스모그 프리 타워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발표를 한다. 로세하르데의 주장과는 반대로 구조물의 공기 정화 효과는 크지 않았고, 그 범위 역시 제한적이었다. 스모그 프리 타워 주변의 미세먼지 지수는 89마이크로그램으로, 세계 보건 기구의 권고 지수인 25마이크로그램에는 훨씬 못미치는 수치였다. 베이징에서의 미세먼지 지수는 종종 200마이크로그램을 넘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부분적인 성공을 이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스모그 프리 타워는 한번 설치하는데 최대 118,000유로 - 약 1억 4000만원 - 에 이르는 금액이 들 수 있다고 하는데, 스모그 알림 타워라고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시점에서 사업을 계속하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베이징시는 추가 설치 계획을 접고, 구조물 역시 철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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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 대통령 후보는 2017년 미세먼지 대책에 관련된 공약을 발표하면서 스모그 프리 타워를 언급했다. 한국에서도 이를 시범적으로 운영을 해서 그 효과를 검증해보자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각 진영 간의 날선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그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결론을 내린 스모그 프리 타워를 꺼내든 것이었다. 좋은 먹잇감이었다. 언론들은 팩트 체크에 열을 올렸고, 경쟁 정당들은 스모그 프리 타워를 실패한 프로젝트라고 낙인을 찍었다. 정치적인 논쟁 속에서 붙게 된 오명은 스모그 프리 타워에게 조금 부당한 측면이 있다. 기대 만큼의 효과는 보여주지 못했지만, 스모그 프리 타워는 그 자체로 상징적인 사건이다. 즉, 현실에 대한 문제 의식이 어떻게 세상을 바꿔 나가는 지에 관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함의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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