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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나치(Grammar Nazis)는 영미권에서 "집요하게 다른 사람의 문법에 대해 지적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예전에는 학교 교사들이나 직업적으로 하던 일이지만, 정보화 시대인 요즘은 인터넷에서 문법나치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낫다"와 "낳다"는 발암 수준으로 통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문법나치가 되는가? 사람들은 자각하지는 않지만 문법을 지킨다는 것을 공중도덕을 지키는 것을 동일한 수준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해석: 어의없네요. 맞춤법 좀 틀린다고 공황장애니 발암물질이니 하시는 분들 지금 인신공격 하세요? 안 그래도 수강신청 망해서 기분 안 좋은데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대학 나왔다고 맞춤법 잘 알 거라는 고정관념도 버리세요. 실업계 가려다가 OMR 카드 마킹 잘못해서 인문계 된 거니까요. 님들이 비난하는 것도 엄연한 사생활 침해거든요? 맞춤법 보다는 아동학대, 더치페이 안 하는 여자 등 다른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게 나을듯요.
특히나 익명성을 등에 업은 인터넷 환경에서 "비표준" 한국어 화자는 길바닥에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 수준으로 키보드 선비들의 공격을 받게 된다. 유교와 주자학적 세계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현대의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맞춤법의 도덕화 현상"이 국가적인 단위에서도 나타나게 되는데, 한국 표준어 규정의 제1항을 살펴보자.
제1항.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해설. (이전의 규정에서 사용한 표현인) ‘중류 사회’는 그 기준이 모호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경향도 감안하여 ‘교양 있는 사람들’로 바꾼 것이다. 이 구절의 또 하나의 의도는, 이렇게 정함으로써 앞으로는 표준어를 못하면 교양 없는 사람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표준어는 국민 누구나가 공통적으로 쓸 수 있게 마련한 공용어(公用語)이므로, 공적(公的) 활동을 하는 이들이 표준어를 익혀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필수적 교양인 것이다. 그러기에 영국 같은 데서는 런던에 표준어 훈련 기관이 많이 있어 국회 의원이나 정부 관리 등 공적인 활동을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 정확하고 품위 있는 표준어 발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표준어 교육은 학교 교육에서 그 기본이 닦여야 한다. 그러기에 모든 교육자는 무엇보다도 정확한 표준어를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볼 때, 표준어는 교양의 수준을 넘어 국민이 갖추어야 할 의무 요건(義務要件)이라 하겠다.
표준어를 구사하는 것은 '국민의 의무'이며, 표준어를 구사하지 않는 국민들을 교양 없는 사람이라고 우회적이지만 다소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규정의 해설자가 의도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표준어가 일종의 사교적 화폐 (social currency)로써 작용한다는 사실을 명시한 것이다. 특히나 예로 들고 있는 영국의 경우는 아직도 완고한 사회계급 제도가 있고, 자신의 계급에 맞는 영어를 쓰는 사회인데, 표준어 구사가 교양 수준을 나타내는 장치라는 해설자의 의식이 적나라하게 묻어나는 대목이다.
물론 그러한 의식의 잘잘못을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표준어를 구사한다는 것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의무' 수준에까지 올라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표준어 구사의 실패는 바른 시민의 의무를 져버리고 마는 비도덕적인 일인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교양인과 자리를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신들도 모르게 기저에 깔려있다.
흥미로운 점은 비표준어 구사자들이 가지는 표준어에 대한 태도이다. 위의 도표는 영국 캠브릿지 대학에서 1974년에 발표된 논문에서 가져 왔는데, 영국 Norwich 지방에서 다른 사회계층의 사람들이 다른 상황에서 얼마나 자주 비격식적인 발음을 사용하는지 세어 본 것이다. 정확히는 "going"과 같은 단어에서 -ing 대신 -in' (goin') 발음을 사용하는 횟수이다.
놀랍게도 사회계층간에 역전되는 구간이 단 하나도 없음을 볼 수 있으며, 주어진 상황의 격식도가 떨어질 수록 비표준어를 구사하는 빈도가 높아진다. 눈여겨 볼 점은, 격식도가 높은 과제에서는 낮은 사회계층도 격식있는 발음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표준어 구사자가 자신의 언어생활에 대해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인지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격식을 차린 말을 쓰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비표준어를 쓰는 것이 실례라도 되는 것 처럼 말이다.
이렇듯 표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에티켓이나 도덕의 수준에 올라있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문법을 지적하는 것은 상대의 주장을 약화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상대의 교육 수준에 대한 의심을 던지는 동시에 도덕적 수치심에 상응하는 창피를 한꺼번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방의 주장을 문법적 오류로써 공격하는 것은 인신공격이나 기타 논리적 오류, 선동으로 빠지기 일쑤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상습적 문법나치는 일종의 새디스트거나 오지랖이 상당히 넓은 사람들이라고 볼 여지가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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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과연 표준어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언어란 것은 살아있어서 항상 변화하고 있고, '요즘 애들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파괴한다'고 생각하는 세대는 결국엔 죽어 없어지고 새로운 세대가 주류로 도래하기 마련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학자들이 학문적 당위성을 내세우며 현실에 맞지 않는 표준어를 내세우는 경우도 있는데, "자장면"이 표준어라면서 "짜장면"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을 면박 주던 때를 생각 해 보자. 언어를 연구해서 체계를 세우고, 모든 단어를 집대성하려는 학자들의 학문적인 열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표준어"를 만드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포스트로 풀어보아야겠다.